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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스토리텔링 분석 (기승전결, 플롯, 클리셰)

by 율벚꽃 2025. 6. 15.

한국영화 스토리텔링 분석 관련 사진

 

살면서 이런 경험,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줄거리는 단순한데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영화. 예상 가능한 흐름인데도 마음을 훅 건드렸던 장면. 아니면 반대로, 아무리 참신한 설정이라 해도 도무지 몰입이 안 됐던 이야기.

영화를 보는 건 단순한 이야기 감상이 아닙니다. 그 안에 숨은 구조와 설계, 타이밍과 감정선, 캐릭터 배치까지— 이 모든 걸 관객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반응하게 되죠.

그래서 오늘은 한 발짝 물러나, 영화 그 자체보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는가, 즉 스토리텔링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기승전결', '플롯', '클리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들이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설계했는지를 한국 영화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기승전결이 살아 있는 이야기 – 감정을 흐르게 만드는 구조

기승전결은 익숙한 단어입니다. 그만큼 뻔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네 글자 안에는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이야기의 리듬이 들어 있습니다. ‘기’에서 인물과 세계를 소개하고, ‘승’에서 갈등을 심화하며, ‘전’에서 전환점이 등장하고, ‘결’에서 마무리되는 구조. 이 틀을 잘 활용하면 관객은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됩니다.

<완득이>(2011)는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설정만 보면 크게 특별할 게 없습니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가 어느 날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가다가 낯선 어른과 갈등하고, 점점 변화하는 이야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끝까지 시선을 놓을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그건 이 영화가 감정을 흐르듯 잘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완득의 시선에서 세상이 얼마나 답답한지를 보여주고, 이후 한 인물과의 충돌을 통해 감정을 쌓고, 그 충돌이 전환점이 되면서 완득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선, 그는 뭔가 바뀐 채로 관객 앞에 다시 서죠.

이처럼 기승전결 구조는 결국 감정의 설계도입니다. 사건이 아니라 감정의 곡선을 따라가게 만드는 방식이죠.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이 구조를 따라야만 좋은 건 아닙니다. <소녀>(2013)는 일부러 이 구조를 비틀며 관객의 예상을 깨뜨립니다. 갈등이 커지는 듯하지만 어디선가 갑자기 감정이 정지되고, 해결될 듯했던 문제가 끝내 봉합되지 않은 채 남아 있죠.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오래 남습니다.

기승전결은 꼭 완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론 일부러 결을 생략하는 것이 더 강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니까요.

플롯이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기술

줄거리와 플롯은 다릅니다. 줄거리가 ‘무엇이 일어났는가’라면, 플롯은 그걸 ‘어떤 순서로,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이야기도 플롯만 달리 짜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되죠.

<마더>(2009)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영화는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엄마의 이야기지만, 그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시점과 시간의 뒤섞임 속에서 전개됩니다. 관객은 처음엔 엄마의 분노에 이입하지만, 플롯이 뒤틀리면서 과연 이 분노가 정당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죠.

이 영화는 진실을 직선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퍼즐처럼 조각조각 보여주며,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게 합니다. 그 흐름 자체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고,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죠.

또한 <화차>(2012)는 진실을 조금씩 파고드는 구성으로 마치 추리소설처럼 관객의 긴장을 유지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드러내는 순서입니다. 정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 그리고 언제 관객에게 드러내느냐. 그 판단이 이야기의 몰입도를 결정짓습니다.

플롯이란 결국 ‘드러낼 것과 감출 것’을 조절하는 기술입니다. 좋은 플롯은 관객을 주인공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아, 이때 그랬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을 때의 쾌감은 단순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훨씬 강한 감정을 남깁니다.

클리셰, 피할 수 없다면 전복하라

클리셰(cliché)는 익숙해서 위험하고, 익숙해서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똑같은 장면에서 감동을 느끼는 건 아니죠. 결국 문제는 ‘어떤 감정으로 그 익숙함을 다루느냐’에 있습니다.

<7번방의 선물>(2013)은 눈물을 자극하는 요소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감정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진부한 설정 안에서도 인물들의 관계를 세심하게 그려내며 관객을 설득합니다.

<곡성>(2016)은 클리셰를 철저히 전복합니다. 전형적인 미스터리 구조를 따르다가, 중반부터는 믿음, 종교, 인간 본성의 영역으로 뛰어들죠. 기존의 기대를 배반함으로써 공포와 불안이 배가됩니다.

<기생충>(2019)은 클리셰를 주제로 전환시킵니다. 빈부격차라는 익숙한 설정을 상징과 공간으로 확장해, 관객이 스스로 그 세계를 해석하게 만들죠.

클리셰는 피해야 할 게 아니라, 어떻게 비틀고, 언제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결론: 결국 영화는 '어떻게 말하느냐'의 예술

같은 이야기를 수천 명이 다르게 말하듯, 같은 주제를 가진 영화라도 관객의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이야기를 말하는 방식, 즉 스토리텔링입니다.

기승전결은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고, 플롯은 사건의 타이밍과 배치를 조절하며, 클리셰는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관객의 반응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를 ‘잘’ 쓴다는 건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결국 관객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아주 인간적인 감각의 문제입니다.

좋은 스토리는 결국 관객의 마음 어딘가에 말을 겁니다. “이 이야기, 네 이야기 같지 않니?” 하고.

그래서 우리는 어떤 영화는 잊어버리고, 어떤 영화는 평생 기억하게 되는 거겠죠.